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문단 편집) ===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 === 저자는 2장에서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녀 간 교류의 양상을 사례별로 정리하고 있으며, 이를 목록화하면 다음과 같다.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면, 한국 남성들은 여성들 앞에서 자신이 무례하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항상 당당하다는 점, 심각한 갈등의 원인을 일차적으로 여성에게서 찾거나 그것이 안 되면 애써 진실을 회피한다는 점, 평소에는 여성들의 영역에 손도 안 대다가 남들 앞에서는 사소하게 숟가락 하나 얹어준 뒤 엄청나게 으스대고 생색을 낸다는 점,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자신 정도면 도덕적으로 수준 높은 남성이라고 자화자찬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장이야말로 한국 남성들에 대한 가장 날선 비판의 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의 [[중년]] 남성들은 자신이 남성이면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여성이거나 어린 사람들에게 [[꼰대|마음대로 지적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착각하며, 이것이 사회적으로 점차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에 억울해하고 괘씸해한다. 이들은 정말로 뉴스에 나올 정도로 심각한 사고를 일으키는 소수의 사례만이 "개저씨" 같은 모욕적 표현을 들을 만하다고 믿는다. 이들 중년 남성들은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불운해졌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잘못했던 것을 반성하고 고칠 기회를 얻었으니 오히려 좋은 일이다. * [[월남 전쟁]] 이후 부각된 [[라이따이한]] 문제는 일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전시 상황에서의 집단적 가해행위와 무책임한 섹스에 속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전시상황의 특수성으로 옹호될 수 없다.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미국]]의 경우, Orderly Departure Program을 통해서 미국인 혼혈아들의 미국행을 지원해 왔지만, 한국은 전쟁 이후로 라이따이한 문제를 애써 외면하려 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부 한국 근로자들은 베트남에서 아예 살림까지 차렸다가, 귀국 때가 되면 "[[거짓말|조만간 찾으러 오겠다]]" 고 약속하고는 연락을 끊어버린다.[* 심지어 1995년 5월 2일 한겨레신문 기사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기다리다 못한 아내가 한국으로 남편을 찾아오려 하자, 해당 여성에게 출입금지 명령을 내려 달라고 국가에 요청한 남성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 남성들은 '[[아버지]]의 무게', '가정적인 남편' 을 몹시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절을 어기고 천륜을 저버림으로써 (한국과 베트남 양쪽의) 화목한 가정들을 깨뜨리고 있다. * 한 세대 이후의 10-20대 [[필리핀]] 유학생들은 다시 3만 명에 달하는 [[코피노]] 문제를 유발했다. 이는 이들 [[유학생]]들이 자신의 성적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은 부모는 월남 전쟁의 라이따이한 문제에 대한 책임이 있고, 가르쳐 주지 않은 사회는 남자다움에 대해 잘못 가르친 책임이 있다. 진정 남자다운 남자는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책임을 지는 것이겠으나, 한국 남성들은 애써 그런 문제를 가리려 하고, 듣지 않으려 하고, 말하는 입을 틀어막으려 하고, 자기 피붙이를 기꺼이 외면한다. * 남성 흡연자들이 여성 흡연자들에 비해서 나타내 보이는 가장 큰 차이점은 이들이 공공시설 및 공적인 장소에서 당당하게 흡연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손에 담배를 들고 걷거나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흡연을 하는 [[길빵]]의 경우, 여성들은 거의 없는 반면 남성들은 많은 수를 목격할 수 있다.[* 저자 부부가 일부러 동네의 재래시장에 방문하여 두어 시간 동안 관찰해 보았는데, 서른 명이 넘는 남성 흡연자들이 공공연히 꽁초를 들고 걷는 모습을 보았지만 여성 흡연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반면 여성들은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서 흡연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남성들은 여성에게 지적을 받으면 [[적반하장|도리어 목청을 높이지만]], 똑같은 내용으로 남성이 지적하면 곧바로 꼬리를 내린다. 남성의 지적에 대해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면서 끝까지 항거하는 남성 흡연자는 없다. * 도로에서 어떤 차량이 교통신호를 어겼을 때 남성들은 [[김여사|그 운전자가 여성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욕을 퍼붓는다. 특히 (저자가 겪었던 경우처럼) [[마티즈]] 등의 경차일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러나 만일 운전자가 남성인 것으로 밝혀지면 그저 못마땅해하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사과하고서 그 현장을 서둘러 뜨려고 한다. 만일 상대방이 아까 욕설에 대해서 [[경찰서]]로 가서 따지자고 하면 기세는 더욱 약해진다. 이들은 "법원까지 가는 한이 있어도 당신은 욕을 먹어 지당하다고 확신한다" 고 믿는 경우는 없다. 강인규 교수에 따르면[* 강인규 (2012).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당신에게. 오마이북.] 언론 역시 여성이 교통사고를 내면 차주의 성별을 부각시키고, 남성이 교통사고를 내면 적당히 덮는 경향을 보인다. 진짜 해야 할 일은, 운전할 실력도 안 되면서 차를 끌고 나온 운전자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미숙한 운전자들까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면허 발급 제도와 교통 법령,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보면 여성 운전자들이 보통 운전을 못 한다는 경향보다는, 남성 운전자들이 보통 무례하다는 경향이 더 명확히 나타난다. * 남성들은 [[맞벌이]] 시대를 맞이하여 아내들의 직업활동을 긍정하고 지원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가정에서의 가사노동은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여성들의 이중노동의 문제를 초래한다. 즉, 맞벌이를 하는 건 좋은데, 그래도 "내 밥은 꼬박꼬박 차려주고, 집안일도 빈틈없이 해 주어야 한다, 그러니 기왕이면 집안일에 방해가 안 되는 직종을 택하라" 고 요구한다. 남성들의 이러한 요구는 결국 [[초등학교]] 여교사가 신붓감 1순위로 지목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여성들은 금방 깨닫지만 남성들은 쉽게 깨닫지 못한다. * [[가부장제|가부장적]]인 남성일수록 다른 사람들과 함께 [[캠프]] 혹은 [[MT]]에 가면 유독 더 열정적으로 요리를 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주변 여성들이 "남자분이 요리도 이렇게 적극적이시니, 나중에 아내 되실 분은 좋겠어요!" 등으로 찬사를 늘어놓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남성들은 명절 때에도 주방에서 사소한 것 하나를 거들어준 뒤 온갖 생색을 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상황에서 여성들은 늘상 하는 일을 하면서도 전혀 생색을 내지 않는다. 이것은 요리는 남성들이 원래 안 해도 되는 것이라는 전제로 뒷받침되어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반대로 중년의 경우 명절 때에는 더욱 완고하고 가부장적인 모습이 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주변 친척들에게 "[[여성혐오|역시 아내는 꽉 잡고 살아야 해, 남자는 저래야지, 저놈 제대로 컸다]]" 같은 칭찬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 (저자를 포함하여) 많은 남성들은 아름다운 여성일수록 더욱 조심하고 행여나 성추행이 되지 않을까 몸가짐을 조심하여 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대로 그다지 외모가 아름답지 않은 여성들에게는 대충 대하곤 한다. 저자가 보기에 이는 아름다운 여성은 사람 이상의 존재로 떠받들고, 외모가 별로인 여성은 사람 이하의 취급을 한다고 볼 수 있다. *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든 남성" 에는 소시민적인 직장인들의 지친 퇴근길이라는 익숙한 이미지를 연상하지만,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든 여성" 에는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으며, 오히려 치마를 입고서도 그렇게 부주의하니까 밤낮 성추행을 당하는 것이라며 비난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성들이 바지만 입고 남자처럼 회사를 다녔다가는 이번에는 "여자가 선머슴 같다, 예쁘게 구는 맛이 없다" 는 소리를 듣는다. 동물도 주인의 훈련에 따라 평소에 환장하던 음식 앞에서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듯이, 남성들도 지하철과 같은 공적 공간에서는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주의를 여성들이 하는 게 맞다고 한다면, 차라리 지하철 승차 전에 남성들을 일괄 검문하거나, 혹은 탈의실을 두어서 여성들이 옷을 갈아입도록 하는 게 합당할 것이다. * 남성들은 지하철에서 아무리 술주정을 하고 사방에 구토를 해도 화젯거리가 되지 않지만, 지하철에서 애완견 변을 안 치운 여성은 그 즉시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특히나 공중도덕을 못 지켰다고 해서 [[신상털이|자신의 모든 개인정보가 웹상에 공개되는 처지]]가 되는 것은 여성뿐이며, 남성들은 아무리 지하철에서 부침개를 만들어도 그런 일을 겪지는 않는다. *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에서 감독은 사회적 약자로서 존재하고 고통 받는 여성들을 그려내지만, 정작 남성들은 "영화 속 여성들은 협력할 줄 모른다, 부당함을 묵인한다, 자기들끼리 시기한다, 현실의 남자들을 그렇지 않다" 의 주장만을 늘어놓는다. 게다가 해당 영화의 악역들을 자신들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존재로 이해함으로써, "우리도 저렇게 될 수도 있다" 가 아니라 "저따위 놈들에 비하면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다" 의 생각으로 이어지게 한다. 즉, 남성들은 [[인간말종|극단적으로 폭력적이고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만한 남성들]]을 들어서 자신의 사소한 잘못을 덮는다.[* ex. "술 마시고 강간하는 것에 비하면, 술 마시고 섹스를 요구하는 나는 문제가 안 된다", "술 마시고 애인을 죽이는 놈에 비하면, 술 마시고 가끔 물건 집어던지는 나는 양반이다", "집안일에 수수방관하는 남편들에 비하면, 어쩌다 쓰레기라도 한두 번 버려주는 나는 자상한 남편이다"] 그리고 이를 들어 "나 정도 되는 남자와 [[결혼]]한 것에 감사해!" 라고 의기양양해하고, 자랑스럽게 [[블로그]]나 SNS에 올리거나, 주위에 떠들고 다닌다. * (저자를 포함하여) 남성들은 모유수유 중인 아내가 밤에 기상하여 젖을 먹이는 것이 안쓰럽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 아내에게 어떤 실질적 도움을 주지도 않았고, 어쩌다 한 번씩 일어나는 거려니 하고 막연히 짐작하면서, 아내를 안쓰럽게 여길 줄 아는 자신이야말로 진정 성 평등한 남편이라며 뿌듯해하고 기특해한다. 어쩌다 갓난아기에게 풀타임 육아를 할 일이 있으면 이들 남성들은 가정적인 아버지상을 보여주겠다며 의기양양해서 덤벼들지만, 결국 하루 종일 아기와 함께 심하게 고생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아내가 밤에 귀가하면 있는 대로 고생한 티를 내면서 투덜거린다. 정작 아내들도 처음부터 육아를 잘 했던 것은 아니며, 단지 어머니로서의 책임감에 의해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남편들은 육아에 대해 그런 책임감을 지지 않는 남의 일처럼 생각하기에, 힘들면 힘들다고 온갖 생색을 다 낼 수 있다. 그리고 아내들도 그런 남편들의 육아실력에 대해 딱히 더 기대하지 않는다. 이상의 사례들 중에는 누가 봐도 명백히 남성들이 잘못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사회적으로 꽤 잘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특히나 [[의도는 좋았다|선의에서 나온 것인데 이상하게 나쁘게 해석된 듯한 사례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사회학]]은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며, 그 이면에 얽힌 원인을 찾기 위하여 [[사회학적 상상력|상상력을 동원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차원에서는 분명히 여성을 향한 따뜻한 손길로 여겨질 만한 것들이, 구조의 차원에서는 뜻밖에도 여성을 향한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MT에 가서 팔을 걷어붙이며 "오늘만큼은 내가 요리사!" 를 외치는 남성은 정말로 학과의 학우들을 위한 배려와 봉사의 정신에서 그런 말을 했을 수 있고, 그 주변에서 "어머나 선배님 센스 있으세요!" 를 호들갑스럽게 외치는 여성들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았을 수 있지만, 이런 남녀가 모이고 모이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성차별|요리는 원래 기본적으로 여자들이나 하는 거고, 남자는 특별한 날에나 남들 앞에서 어쩌다 가끔씩 하는 거지]]" 라는 사회적인 암묵적 합의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